날것들에 대한 연민, 혹은 애정

                                                                                                                이경모 | 수원문화재단

  대안공간 눈에서 펼쳐진 김순임의 개인전은 우리에게 익숙한 듯 하면서도 여전히 생소한 작업 형식과 내용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시각예술의 향후 전개방향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갤러리 안에서 완결된 예술작품이 전시된 것도 아니고 매혹적인 퍼포먼스가 펼쳐진 것도 아니다. 작가가 문제시하는 것은 작업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시공간적 서사과정과 진한 노동의 과정에서 생성되는 다양한 가치와 여기에서 파생된 문맥들이다. 그의 행위의 흔적들은 완성태로서의 작품이라기보다는 가능태로서의 작업으로써 늘 변화의 주기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살아있는 실체로 이해된다.

작가는 ‘짓거리’를 통해 발견되어진 것들을 ‘그냥’ 제시함으로써 동시대의 미학적 담론에 이의제기하거나 특정한 경험의 산물들을 ‘세심하게’ 설치하는 수고로움을 통하여 예술에서 노동의 가치를 새삼 환기시킨다. 이 ‘이항대립적’ 접근태도는 완결된 작품은 하나의 상품으로 존재가치를 발할 뿐이라는 각성과 예술의 본질은 지난한 노동의 과정에서 현현된다는 오랜 인식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연금술이기도 하다. 작가에 의해 선택되거나 식생(植生)된 설치물들은 관객의 미적경험에 의해 미미한 존재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시공간이 갖는 아우라와 작가의 미적욕망이 어우러져 강한 생명성을 띠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설치물 가운데 우선 눈에 띠는 것은 그가 일상에서 소비하거나 주워 모은 자연적․문명적 편린들이다. 이를 제시함으로써 작가는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사물이 갖는 가치와 의미에 대하여 새삼 되묻게 만든다. “생(生), 날(alive, wild and fly) 씨앗들(가능성이 있는 에너지 덩어리) 아직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생기다 만, 발견되어진 것들...”은 작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거나 작가와 일정의 시공간을 함께 욕망을 충족시켜온 대상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대상으로 타자화하기 보다는 자아와 동일시한다.

 

“덜된, 덜 익은, 돼다 만, 생기다 만... 것들... 하지만 그 완벽하지 못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작업실에서 매일 만나며 누렸다... 나 자신처럼, 이 생기다 만 것들을 나는 씨앗이라 한다. 그냥 한 알의 덩어리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또는 적절할 때 물과 바람과 빛을 만나 스스로 성장 할 수도 있는 이것 들을, 관찰자로서 내가 누린 즐거움이 관객에게도 전해졌으면 한다.”

 

말하자면 작가는 씨앗을 애벌레처럼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보고, 이러한 미숙함의 본성을 미완의 가능성으로, 혹은 삶에 대한 한줄기 빛으로 봄으로서 영원성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사유를 보여준다. 작가의 이러한 사유에는 완전한 것이 선이라는 카논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내재되어 있는데, 버려지는 것에 대한 애정이 내재되어 있는 그의 컬렉션은 향유라기보다는 연민에 가깝다. 이때 그의 삶과 경험, 행위의 흔적들은 시간이라는 필멸의 통로를 지나는 동안 새로운 생명성을 띠며 환생하게 되는데, 이는 자연의 법칙이라기보다는 현실경험의 잔상이 지니는 시공간적 의미 때문일 것이다.

말라비틀어져가는 씨앗이나 요행이 돋고 자라는 싹, 타들어가는 촛불과 행위의 흔적을 담아낸 사진은 시간을 매개로 의미를 부여받고 공간 안에서 예술로 거듭난다. 이때 전통적 예술이 갖는 아우라가 마땅히 벗겨져야 할 것임이 입증되는데 예술작품의 아우라는 예술의 사용가치가 종교의식에서 발휘되었던 것의 흔적으로 김순임의 씨앗은 이와는 전혀 별개의 아우라를 발산한다. 그러면서 예술의 진정한 속성과 사회적 기능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즉 우리를 초심의 미학적 담론으로 인도하고 있다.

이처럼 그의 예술은 특수하게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상황을 수용함으로써㰡현실적인㰡‘것으로 이행된다. ‘현실적’이란 방법론상 현재 속에 깃든 리얼리티라는 중심 범주를 통하여 형상화기 마련이다. 여기서 리얼리티라는 것은 물론 평범한 것, 혹은 빈번하게 사용되는 대표적인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현재 속에서 맥동치는 과거와 미래를 가장 명백하게 보여주는 성격들과 대상들로 곧 개별화인 동시에 보편화이다. 이러한 리얼리티를 창조해가는 방식은 진리 총체성, 다시 말하자면 김순임으로 하여금 삶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으로부터 경험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온갖 영역을 모두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근거일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예술작품의 상품으로의 변화 과정에서 낡은 예술작품 개념이 그 물신화된 것에 더 이상 적용되지 않을 때에는 그 물건의 기능을 버리지 않기 위해 예술작품 개념을 "조심스러고도 신중하게 그러나 아무런 두려움 없이" 버려야 할 것이라고 한 브레히트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리고 김순임의 작업에 아직 남아 있는 예술적 기능 역시 사회적 기능에 부수적인 것으로 재편될지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