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의 시각수사학과 은유   ;  김성호 ( 미술평론)


  대오브제의 탈(脫)기능주의에 대한 물음과 은유

  뒤샹의 계명을 추종하는 현대미술에서의 오브제란 대개 자신의 원적지를 떠나 풍요로운 객지를 유유자적 방랑하게 마련이다. 화장실로부터 혹은 폐차장으로부터 떠나온 문명의 허섭스레기들이 새로운 명명작업을 거쳐 이 시대의 예술로 부활하는 일은 다반사이다. 쓰레기가 된 고물이든, 신상품으로 출시된 디지털 기기이든, 예술로 전환한 모든 오브제들은 사물 본유의 기능을 잃는 대신 예술이란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김민기의 작업에 편입된 오브제들 또한 새로운 수혈 작업을 거쳐 예술(품)이 된다. 그것이 자동차 바퀴, 손수레, 칫솔과 같은 ‘발견된 실제의 오브제’이든, 거대한 주사기, 커다란 막대사탕, 엎어진 아이스크림과 같은 ‘만들어진 환영의 오브제’이든 간에 사물이 지닌 애초의 기능은 탈각되고 일상품으로부터 예술품으로 자리 이동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작가 김민기가 오브제의 예술적 전환을 통해 발현된 예술적 결과물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오브제의 전환 과정 자체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이다. 일테면 그는 자동차바퀴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예술품으로 전환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자동차바퀴가 원래 지니고 있는 사물의 기능주의적 존재론에 딴죽을 거는데 관심을 기울인다. 즉 자동차바퀴를 괴롭히고 망가뜨려서 예술품으로 전환시킨 후, “굴러갈 수 있어야만 바퀴라고 할 수 있는 거지?”라는 짓궂은 질문을 관람객들에게 내던진다. 그는 이 작품에 ‘목적을 상실한 자’라는 제명을 붙였다. 즉 그것은 본유의 기능을 잃은 사물이 과연 어떠한 존재의 의미가 있는지를 거꾸로 되묻는 질문인 것이다.

  구르는 기능을 상실한 ‘삼각형 바퀴를 달고 있는 손수레’나 ‘한줄기 눈물방울을 달고 있는 자동차 바퀴’도 그러하지만, 먹을 것으로서의 효용성과 기능을 상실한 ‘엎어진 아이스크림’이나 ‘깨어진 막대사탕’은 사물 본유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무늬 혹은 이름만 바퀴, 아이스크림, 막대사탕일 뿐인 것들’이다.

  주지하듯 여기서 ‘무늬 혹은 이름’이라는 은유는 ‘형태’(형상+상태)와 깊이 관계한다. ‘기능주의’라는 것이, 전체적 구조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부분)이 구조(전체)의 존속에 기여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듯이, 기능은 ‘구조적 형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이동의 기능’을 지닌 자동차(전체)란 ‘구르는 기능’을 갖춘 ‘둥그런(형상) 바퀴(부분)’와 상호간 존속관계를 맺는다. 또한 ‘자르는 기능’을 지닌 부엌칼(전체)은 생선뼈를 거뜬히 잘라낼 수 있을 만큼의 ‘날카로운(상태) 칼날(부분)’를 지녀야만 한다.

  이렇듯 부분과 전체의 존속관계를 통해 ‘무늬 혹은 이름만 남았을 뿐 그 본유의 기능을 상실한 사물들’을 탐구하는 작업을 통해서 김민기는 우리의 현실계를 통렬히 은유한다. 즉 비뚤어진 형태(형상)와 변성의 형태(상태)로 오브제를 변형시켜 전체구조와 맺는 존속관계를 해체함으로써 변형 이전의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인 조화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작업을 지속한다. 이렇듯 김민기의 작업은 탈(脫)기능의 오브제들을 형상화함으로써 유기적 구조를 해체하고 있는 작금의 병적인 현대사회의 징후들을 의미심장하게 은유해낸다.

 

 IF의 시각수사학 혹은 도상수사학

   김민기의 작품에서 이러한 은유는 If, 즉 “만약에...이라면, 한다면”이라는 가정의 수사학으로부터 잉태한다. 예를 들어, 부엌칼을 형상화한 그의 작품에서 “만약에 칼날이 꽃잎으로 되어 있다면”이라는 전제, 즉 탈기능을 촉발시키는 가정적 조건은 그의 작업을 연쇄시키는 동력이다. 여기서 아무 것도 베어낼 수 없는 칼의 존재론은 무용지물이라는 ‘뻔한 결과’를 노정한다. 또한 ‘만약에 주사바늘이 휘어져 있다면’이라는 엉뚱한 상상으로 시작된 거대한 주사기 형상 역시 If라는 가정의 수사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철심이 촘촘히 박힌 칫솔 역시 부드러운 칫솔이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가정적 전제를 통해 배반하면서 잉태된 작품이다.

  한편,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 것이지만, 앞서의 것들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들을 검토해볼 수도 있겠다. 일예로 퍼즐로 구획된 한국 지도에서 독도가 위치한 퍼즐조각 한 개가 사라진 작품 역시 “만약 독도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엉뚱한 전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피상적으로 이 작품은 이전에 언급한 작품들과 동일한 가정의 수사학을 담고 있고, 사물에 부여된 본유의 기능에 대해서 이의제기를 하고 시작된 것들이다. 더 나아가 남성의 성징이 사라진 퍼즐작품은 이러한 이의제기를 개념적 차원으로 한 단계 더 증폭시킨다. 이러한 작품들은 구조주의적 전체를 형성하는 사물(혹은 인체)의 탈기능적 관심이 조금 더 보폭을 넓혀 ‘구조주의적 사회학’의 관점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하겠다. 즉 사물 혹은 인체에 대한 은유를 통해서 현실계의 사회구조와 그 작용체계를 반추할 수 있게끔 조형적 전략을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김민기가 구사하는 If의 수사학은 다분히 언어적인 것이기보다는 시각적인 것이다. 즉 시각수사학(Rhétorique viseulle)으로 정초될 성격인 것이다. 이 용어는 언어적 수사학 방법론에 지각정보 이론, 생리학과 같은 과학적 연구방법을 접목시키면서 이미지를 분석해온 벨기에의 기호론 연구집단인 ‘그룹 뮈(µ)’의 연구에서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이것은 김민기의 작업을 풀어보는 좋은 분석도구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작품이 형태(형상+상태)를 통해 기능주의적 사고관의 전복을 꾀하고 이윽고 그것의 이상론에 대한 의문제기를 한다는 점에서, 형태를 조형기호와 도상기호로 나누어 고찰한 ‘그룹 µ’의 연구와 공유하는 진폭이 의외로 크다. 그런 면에서 ‘그룹 µ’의 시각수사학은 ‘도상-조형 수사학’이라는 다른 용어로 지칭되기도 한다.

  그러나 김민기의 시각수사학은 도상-조형 수사학으로 고찰되기에 마뜩치 않은 부분이 있다. 그가 은유의 전략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 대상이 자동차 바퀴, 지도, 주사기, 칼의 경우에서처럼 주로 ‘지시대상을 갖는 사물들’을 도상기호(형상을 갖는)로 전면에 내세우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지시대상을 갖지 않는 잠재적 존재’인 조형기호(형상을 갖지 않는)란 그의 작품에서 매우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정작 도상기호와 대등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그의 작품에서 오브제의 표면 위에 올려붙인 실리콘 덩어리들은 모두 그가 일일이 호흡을 불어가며 형상을 이지러뜨린 채로 건조시켜 만들어낸 조형기호들이다. 이러한 조형기호들은 ‘그룹 µ’의 도상-조형 수사학이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조형기호의 위치를 점유하지 못한다. 즉 붓질의 유형이나 물감의 마티에르 혹은 스크래치와 같은 불명료한 조형기호들에 ‘의미론’의 주요한 역할을 부여하는 ‘그룹 µ’의 도상-조형 수사학과 달리 김민기는 이러한 조형기호들을 그저 캔버스의 바탕을 메우는 배경 정도의 역할에 위치시키고 있다. 그런 면에서 김민기의 시각수사학이란 다분히 도상수사학에 위치한다.

  김민기의 작품에서 형태(형상+상태) 중 형상 위주의 이미지에 메시지를 담아내는 조형언어는 다분히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관객의 자유로운 상상작용을 일정부분 가로막는다. 그런 만큼, 창작언어의 미적 가치를 전개하기 위한 그물망이 무척 성길 수 있다. 그렇다고 역으로 말해, 메시지를 모호하게 비틀어대는 중의적 어법을 구사하는 예술작품들이 모두 다 미적 가치를 담는 그물망을 촘촘하게 엮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의 작업이 지니는 긍정적 면모는 뚜렷하다. 이번 전시주제 《Destiny nothing Alive》처럼, 망각하기 쉬운 사소한 대상들에 감정이입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나감으로써, 현대인들의 무뎌진 성찰에 반성적 문제제기를 하려는 창작 태도는 김민기의 작업이 갖는 근본적 추동력이다. 아울러 주제의식을 풀어나가는 그의 엉뚱한 상상력 또한 그의 작품의 의미망을 풍성하게 만드는 기폭제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남겨진 관건이 있다면, 그가 감정이입한 사물들을 은유의 전략으로 살려내는 ‘수사(修辭)적 공간의 넓이’만큼, 관람객들이 자유로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의 깊이’를 확보하는 방법론에 대한 고민들이 일정부분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