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전시 리뷰 / 김상미(수원미술전시관 큐레이터)

변신, 어느 날 갑자기.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본 세상은 왠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들인 것 같다. ‘나’에게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사건과 상황에 대한 픽션 아닌 픽션에 불과한 이야기 말이다. 내 삶에는 어떠한 영향조차 줄 수 없는, 그저 ‘아...’ 하는 나지막한 탄식 정도의 이야기들일 뿐 당장은 아무런 체감도 느낄 수 없다.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 사고들을 소재로 매체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방식의 노출, 이를테면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보고 있는 픽션들은 실재와 가상에 대 한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경의 작품은 극적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모습을 토대로 하나의 장면 을 구성하고 있다. 전쟁 혹은 개개인의 사건 사고로부터 예기치 않는 순간에 맞닥트린 인간의 모습을 하나의 화면 안에서 이어 붙여 그로테스크grotesque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화면의 중앙을 중심으로 번지듯 흘러내리는 물감 사이에서 육체는 꺾이고 짓눌려 고통스럽다. 죽었거나 부상으로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다.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벌어 진 상황에 울부짖는 아이들과 체념한 듯 눈의 초점을 잃어버린 사람들 의 육체가 뒤엉켜, 마치 하나의 덩어리에 엮어져 나온 듯하다. 자신 과 자신의 주변에 일어난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은 뭐라 항의 할 수 도, 저항할 힘조차도 없어 보인다. 그저 이 참담하고 황당한 상황에 기 막혀 우는 수밖에

카프카의 <변신[1]> 으로부터

  어느 날 아침, 잠자던 그레고르 잠자는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깨어나자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있는 것을 발견했다. (...중략...)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일까?

  이경의 작업은 해충이 되어버린 그레고르와 그를 바라보는 가족, 주변 이 변신으로부터 적응함에 따라 모두가 변화해 간다는 소설 <변신>의 첫머리로부터 기인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예기치 않게 모두가 변신할 수도 있다는 잠재된 가능성을 열어 놓은 소설에서 작가 이경은 그레고르의 변신으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수많은 의구심들 가운데 특히 변신이 일어나는 지점인 ‘갑자기’에 천착하고 있다. 작가는 늘 갑작스럽게 벌어지거나 예기치 않게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 사고들에 반응하고 있었다. 인터넷만 켜면 세상은 엄청난 사건사고에 대한 기사들로 숨이 막힐 정도다. 필자와 같이 이러한 소식에 대해 무 감각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전쟁과 폭력이 난무 하는 위험하고 잔혹한 기사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작가와 같은 부류 가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살인사건이나 크게는 9·11테러,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같이 세상 밖의 불안하고 자극적인 사건들의 기사에 실린 사진들은 작가 이 경에게 묘한 희열과 집착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시간, 나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가 그러한 사건 안에 노출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잠재된 현실에 불안하기도 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예기치 않게 나 또한 그 속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불편한 사실은 염두 해 두어야 하는 현실이기 때 문이다. 세상은 늘 어지럽게 돌아가고 그 속에서 사건은 갑작스럽게 벌어진다. 인간은 그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집을 방패삼아 몰래 훔쳐보듯 미디어를 통해 세상 밖을 내다보고 있다. 어차피 나도, 내가 숨어 있는 집도 그 세상 안에 속한 하나의 미약한 대상에 불과할 뿐인데 말이다.


소리 없는 외침

  이경의 드로잉 작품에서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얼굴은 일부 찢기고 짓 이겨진 모습으로 온전하지 않다. MASK 시리즈에서 보이는 불안과 공포, 아픔 그리고 체념 등의 복잡한 심경이 가득 찬 얼굴들은 저기 어딘가로 시선을 떨구고 있다. 작품 <A man in misfor tune>을 보면, 엉켜있는 몸뚱이 사이를 비집고 뻗어 나온 경직된 팔의 근육과 함께 무수한 손들이 누군가를 붙잡거나 감싸고 있다. 조각을 전 공한 작가가 만들어 내는 각각의 장면들은 얼굴의 표정에서뿐만 아니 라 신체를 통해서도 감정이 표출된다. 얼굴표정과 신체는 감정을 표현 하는 도구이자 수단으로 손짓은 의사를 전달하는데 있어 언어 다음으로 정확한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한다. 직접적인 신체의 동작으로 전달하는 사일런트 랭귀지silent language , 말 그대로 침묵의 언어인 것이다. 화면을 뚫고 몸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소리 없는 외침은 그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예기치 못한 사건에 대한 놀랍고 당황스러운 마음과 불안하고 불편한, 복잡한 감정이 그대로 전이된다.

  그 녀의 작업들을 보고 난 뒤 한동안 케테 콜비츠의 드로잉과 더불어 인물들의 불안한 심리상태와 발가벗겨진 신체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는 루시앙 프로이드, 폭력적이다 못해 공포 스러운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절제된 시각으로 접근했지만 보는 이 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적나라한 프로이드의 작품 속 알몸이 나, 공포와 잔혹함 그 자체를 시각화하고 있는 베이컨의 작품 속에 내동댕이쳐진 신체는 복잡하거나 격한 움 직임 없이도 추함 혹은 그로테스크함이 화면 전체에서 뿜어져 나온 다. 이는 아마도 이경의 작품에서 보여 지는 복잡 미묘한 감정의 복선들이 그들 의 페인팅과 묘하게 맞닿아 있는 듯 했기 때문일까.

  작가 이경은 어느 날 갑자기 변신하게 된, 변신 할 수 있는 당신 혹은 우 리가 겪을 수 있는 불행에 대해 그리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라는 것은 의미 없는 물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불행을 훔쳐보듯 작업을 하면서 그 알 수 없는 희열과 더불어 찾아오는 죄책감을 경험한다. 해충으로 변해버린 그레고르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모두가 변했다. 꼭 겉모습이 그레고르와 같이 거대한 벌레로 변해야 변신이 아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누구든 해충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그레고르를 바라보는 주변의 사람들과 같이 어느 샌가 해충으로 변한 것을 모르고 살고 있는 지 모른다


[1]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독일어로 <Die Verwandlung>, 영어로 change, disguise, transformation 등으로 해석되는데 변신, 변화, 변경 등 몸의 모양이나 성 격, 태도가 바뀌는 것을 뜻한다. 작가 이경의 작품은 직접적인 몸의 변형이나 변태 혹은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고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 상황’에 대 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