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 소녀되기를 열망

                                                                                           박영택 | 경기대학교 교수

미정의 그림은 소녀라는 캐릭터를 통해 모종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우화적인 그림이다. 이 그림은 마치 동화의 삽화나 일러스트레이션처럼 작가 스스로 만든 이야기에 따른 이미지를 구성해낸다. 그것은 이야기그림이자 자전적이고 내밀한 독백이나 사적인 문장을 거느린다. 그러니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주인공)과 자연풍경, 동물들과 또 다른 인물의 설정은 외부세계를 지시하고나 참조하는 대신에 혹은 미술 내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현대미술의 여러 논리적 게임과는 무관한 자전적인 에피소드나 가상의 이야기(허구)를 만들어내는 환상에 속한다.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그리기는 그러한 허구의 생산과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또한 그 허구는 동시대 문화의 여러 영향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허구, 가상이다. 그러니 동시대 작가들은 미술의 원천, 그림의 자양분을 허구적 이야기를 생산해내는 대중매체 속에서 길어 올린다. 수혈 받는다. 차이가 있다면 그리기라는 손의 놀림과 육체적 노동을 받아내는 일, 작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스스로 사적인 이야기를 생산해낸다는 점이다.

미정의 그림 속에는 동일한 소녀상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 소녀는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이미지이자 작가의 분신 또는 그림 속에서 작가를 대신해 또 다른 삶이나 상황을 만들어나가는 존재다. 일종의 아바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바타는 “신의 영혼에 인간의 신체를 부여한” 또는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나타난 신”이라는 신화적․

어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발달하고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아바타는 ‘시각 이미지 중심의 가상공간에서 주체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그래픽 개체, 즉 어떤 형태든지 가상공간에서 부여된 주체의 디지털화된 신원’이라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따라서 아바타의 가장 단순한 형태는 문자로 표기된 ‘아이디ID’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주체의 정체성이 물리적 상황을 기반으로 인식되었다면, 가상공간에서는 정보가 물리적 흔적인 신체에 우선하여 주체의 정체성을 규정하게 된다. 그래서 아바타는 가상공간에서 인간이 정체성을 대변하는 또 다른 존재인 셈이다.

반면 미정의 그림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화면에 자신이 공들여 그려 넣은 아바타, 소녀상을 등장시켜 우화적인 장면을 가설한다. 캔버스 표면에서 정적으로 자리한 부동의 아바타는 현실계에서 자신의 꿈꾸는 동경과 욕망을 대리해주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모든 그림은 결국 결핍의 증좌이고 충족되지 못하는 꿈의 가설이다.

“캔버스는 무대가 되고 나는 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되어 일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말괄량이 소녀의 감정으로 풀어내고 있다. 작품을 통해 맞닥뜨리게 되는 그녀들의 야룻한 표정 속에서 관객은 자연스러운 상상에 빠지게 된다.”(작가노트)

‘소녀되기’ 이자 소녀에 대한 동경을 보여주는 이 그림은 일종의 키덜트적인 뉘앙스도 전해준다. 여자들은 청순하고 꿈 많던 소녀시절에 대한 동경이 있다. 모든 어른들은 유년의 기억과 순수에 대한 갈망을 지닌다. 소녀상은 그런 순수와 청순함, 미완의 꿈에 대한 동경을 지녔던 그 시절을 상징한다.

그러니 여기서 소녀상은 일종의 상징적 기호의 역할을 한다.

미정이 그림 소녀상은 한결같이 동그란 눈을 또렷하게 뜨고 작은 입술을 작게 오그린 상태에서 정면을 응시한다. 그 시선은 그림 보는 이들을 빤히 쳐다본다. 그 시선을 외면하기 어렵다. 소녀의 알 수 없는 행동, 무대 같은 화면에 등장하는 여러 이미지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아마도 소녀는 그림을 보는 이들, 소녀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은밀히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싶다는 표정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 소녀의 시선, 눈동자를 통로 삼아 들어가 본다. 작가가 은밀히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듣고 싶은 욕망, 소통에의 의지를 은연중 부추켜 주는 그럼 그림이다. 향후 미정의 그림이 자신만의 독자한 캐릭터상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풍경, 상황설정에서 질적인 차원에서의 ‘업그레이드’가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