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고독한 유희로 흔적을 남기는 예술

                                                                                    김성호

일상과 예술

임은빈의 이번 전시는 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작가의 일상 속 자아의 내밀한 사적 공간인 방을 의미함과 동시에 그녀의 예술이 전시되는 갤러리라는 타자들을 초대하는 공적 공간인 방을 의미한다. 그녀가 작명한 이번 전시의 타이틀, 방 갤러리(Bang gallery)란 이처럼 사적 공간/공적 공간 그리고 일상/예술이 한꺼번에 만나는 지점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그 만남이란 쉽지 않다. 탈도 많고 이야기도 많은 일상의 내러티브는 타자들에게 드러내놓고 공론화하기에는 내밀한 것들이 너무 많은 탓도 있지만, 실제 그것들은 타자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모두 겪고 있는 익숙한 것이기 십상이다. 달리 말해, 내게는 처절한 아픔의 역사이고 소중한 체험이었지만, 그것들은 타자들의 시공간 속에서도 그들의 방식대로 써내려가고 있는 각자의 바이오그래피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그저 흔하디흔한 것들로 밝혀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일상의 개별 주체들은 각기 복잡다단한 역사를 살아가지만, 그들이 만든 일상들은 한데 모이면서 그저 평범함 자체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과 차별화하기를 끊임없이 시도했던 근대 이전까지의 예술은 현대의 시점에 이르러 거꾸로 이러한 일상 자체가 되기를 선언한다.

미정의 그림은 소녀라는 캐릭터를 통해 모종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우화적인 그림이다. 이 그림은 마치 동화의 삽화나 일러스트레이션처럼 작가 스스로 만든 이야기에 따른 이미지를 구성해낸다. 그것은 이야기그림이자 자전적이고 내밀한 독백이나 사적인 문장을 거느린다. 그러니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주인공)과 자연풍경, 동물들과 또 다른 인물의 설정은 외부세계를 지시하고나 참조하는 대신에 혹은 미술 내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현대미술의 여러 논리적 게임과는 무관한 자전적인 에피소드나 가상의 이야기(허구)를 만들어내는 환상에 속한다.

단토(Arthur C. Danto)가 예술종말론을 선언하게 된 계기는 워홀의 브릴로박스(Brillo Box, 1964)로 대변되는 팝아트 이래, 예술(전시장의 워홀의 작품으로서의 브릴로박스)과 일상(슈퍼마켓의 일상품으로서의 브릴로박스) 사이에 자리한 ‘식별 불가능성(indiscernibility)’ 때문이었다. 그 뿐인가?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그의 에세이 ‘미술의 음모(Le complot de l'art)’에서 일상이 예술의 언어를 흉내 내고 현대예술 자체가 일상의 평범함을 추종하기를 거듭하면서 예술 자체가 무가치해졌다고 비판하지 않았던가? 이제 ‘예술=일상’의 통합적 세계는 우리의 예술현장에 유행처럼 팽만(膨滿)한 지 이미 오래이다. 대중과의 소통이란 이름으로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현대예술 안에 들어와 앉은 지 오래된 것이다.

그런데 작가 임은빈은 왜 그녀의 작가노트에서 아래처럼 진술하는 것일까?

“일상은 예술이 아니고 예술 또한 일상이 될 수 없다.”

그녀의 이러한 진술은, 우리의 일상과 예술이 뒤섞여 있는 오늘날의 현장 속에서도 궁극적으로 양자가 지향하는 세계가 다르다는 인식-혹은 다르다고 믿고 싶은 기대-을 내 비추는 작가로서의 고백이자 작은 선언이 된다. 그녀가 보기에 현실계에 주목하는 일상과 달리 예술이란 그것이 비루한 현실계에서 작동한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현실 이면의 문제들에 관심을 돌리는 신비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구체적으로 양자의 외양이 유사하게 전개된다고 할지라도 결코 합치할 수 없는 둘의 정체성이 전제되어야만 그녀의 ‘일상으로부터 예술화하기’ 전략이 ‘유효화’될 수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미 ‘공적 공간’이었던 전시장의 벽면을 가정집에서나 볼 수 있는 벽지들로 도배함으로써 ‘사적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녀는 내밀한 자신의 놀이를 전시장에서 공론화하는 한편, 반대로 공적 공간을 마치 사적 공간처럼 꾸밈으로써 ‘자아의 공간/타자의 공간’을 절묘하게 뒤섞어낸다. 즉 ‘사적 공간 ↔ 공적 공간’처럼 쌍방 이동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방이자 갤러러인 ‘방 갤러리’가 된다. 그런 까닭에 패턴 무늬로 이루어진 벽지 위에 투영되는 초원의 말과 같은 영상 작업에서는, 이전의 작가의 낯선 경험이 관객들에게는 방안이라는 낯선 경험으로 오버랩되면서, 그 의미가 배가된다.

이 모두는 작가 임은빈이 일상 속 고독한 자신만의 경험들을 유희의 과정을 통해 공론화되면서 귀결된 것이자, 공적 공간을 사적 공간으로 재창출해내면서 부딪히는 묘한 울림이다. 일테면 거기에는 출산을 앞둔 산모들의 힘들고 어려운 일상에 대한 스스로의 오마주(hommage)처럼 읽히는 흥미로운 퍼포먼스가 담겨 있기도 하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임신부의 몸으로 ‘붕어가 담긴 어항’을 지속적으로 들고 다니는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기록하면서, 출산 전까지 산모가 겪는 어려운 일상을 마치 제례의식처럼 시각화해내기도 했다. 또한 출산 후에는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가 되기로 작정하고 소리 내어 책을 읽고 그것을 녹음하는 오디오북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칼비노(Italo Calvino)의 상상력 가득한 소설『우주만화』와 우광훈의 재기 넘치는 장편소설 『플리머스에서의 즐거운 건맨 생활』로부터 도허티(Brian O' Doherty)의 미술비평서 『inside the white cube』와 발터 벤야민의 철학적 사유가 담긴『일방통행로』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오디오북’이란 기실 제목에서 유추되듯이 ‘아이를 위한 독서’ 정초되기 보다는 ‘자신을 위한 독서’ 전환되는 작업이라 하겠다. 작가가 “지금으로서 독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진술하고 있듯이 그녀는 주부와 작가를 병행하는 자신의 고단한 일상 자체를 예술창작의 소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일상의 고독한 유희’를 마치 숨을 쉬고 밥을 먹듯이 지속한다.

따라서 작가 임은빈의 작업들은 ‘일상으로 짓는 예술’이자 ‘일상으로 흔적을 남기는 예술’이다. 그녀의 작업들에서 모든 일상은 창작을 여는 시작점이자 잠재적인 작품이 된다. 그녀는 “일상은 예술이 아니다.”라며 선언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일상과 예술을 합치해내는 조형 전략으로 그 다름의 근원성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물론 그것은 구체화되지 않는 선언적 대답을 미리 곱씹어보는 -여전히 미완성인 채로 끊임없이 진행되는- 진솔한 질문의 과정들일 것이다.

현대를 사는 재기발랄한 작가들이 날것의 대중문화의 키워드를 자신의 작업 속에 가져오거나 비루한 일상의 현실을 노이즈마케팅하듯이 버무려내는 방식과는 달리, 작가 임은빈은 자신의 체험적 일상에 기초한 채, 그것을 고독한 유희의 방법으로 곱씹고 또 곱씹어낸다. 따라서 작가에게 ‘낯설고 먼 여행’이란 그녀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일상의 공간인 방’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며, 관객에게 잔잔한 감정이입이란 ‘방’에서 벌이는 그녀의 ‘일상의 시간들’을 천천히 곱씹어내는 작가의 ‘고독한 유희의 과정들’로부터 자라서 대면하는 것이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