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기억, 감각을 찾아서

                                                                                    최창희 | 한국미술경영연구소 기획의원

눈을 감아보자. 하얀 방, 빛이 조금 밖에 들지 않는 방이다. 석양이 낮게 드리우고 어느 한 구멍으로 빛이 스며든다. 스며든 빛은 무언가에 반사되어 산란된다. 거울장난. 갑자기 기억은 어릴 적 저 먼 곳으로 향한다. 작은 방에 모로 누워 방 바닥을 문지르다 문득 들어온 빛을 발견한다. 빛을 가지고 책받침으로 장난을 쳐 책상 위, 방안 저쪽 구석까지 빛을 넣어본다. 갑자기 발견한 소리 하나. 빠~앙하는 차 소리, 발걸음 소리, 적막했던 방에 소리로 가득 찬다. 아무 것도 없는 방에 갑자기 빛과 소리, 그 무언가로 가득 해진다.

배민경의 <어떤 이의 풍경>전시는 그렇게 우리의 먼 기억 저 편으로 잡아당긴다. 잃어버린 기억과 쉽게 지나쳐 버린 감각을 일깨운다. 기억과 감각이 하나하나 생명력을 얻고 꿈틀거린다. “~ 살아있구나!” 탄성을 지르는 순간 전시공간은 구석진 방이 되었다. 어릴 적 꼬마 시절 개미장난, 거울장난 하던 순간으로….

 

바닥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신발을 벗고 조심히 걸어주세요. 편히 쉬어주세요.

 

방과 같은 전시공간에 신고 있었던 신발을 조심스레 벗어두고 들어서면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소리와 함께 아스라한 낙엽 냄새, 풀 냄새, 더불어 고즈넉한 숲 속 내음이 온 몸을 휘감는다. 갑자기 어린 아이가 된 거 마냥 여기저기 밟아본다. 여기저기 들여다본다. 삐그덕 삐그덕, 바스락 삐그덕…. 걸음걸이를 옮길 때마다 소리가 난다. 빠르게 걸을 수 없다. 조심조심 사뿐사뿐 그곳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고선 곧 생각에 잠긴다. ‘아~ 가을이구나. 가을 산책을 언제 했었지? 내가 숨을 쉬고 있었나?’

그리고선 다시 바스락 바스락…, 풀내음, 숲내음, 낙엽소리, 낙엽내음, 발걸음은 소리가 되고, 소리는 향기가 된다. 조금은 어두운 안쪽으로 걸어 들어오면 작은 소리가 윙윙 …. 귀를 기울이면 바닥 저편에서 윙윙 소리가 난다. 살짝 누워본다. 푹신하다. 소리가 궁금해져 이제 아주 바닥에 귀를 대고 모로 눕는다. 그리곤 곧 소리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간다. 바람소리, 차소리, 빗소리. 이렇게 누워 있으니 저~어 쪽 방(전시장) 입구에 빛이 눈에 들어온다. 빛이 거울에 반사되어 방안 구석구석을 비추인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에서 마들렌 과자 한 입과 함께 저 머~언 곳으로 빠져들 듯이 배민경의 전시는 소리와 빛, 향기로 관람객을 지금 여기가 아닌 내가 잊고 있었던, 까맣게 놓치고 있던 그 순간으로 이끈다. 우리의 잃어버린 기억과 감각을 일깨운다.

가만히 오래 소리를 들어보니 물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타이핑 소리가 난다. 작가의 앳된 목소리도 들려온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연을 따라 해요. 하지만 아무도 자연이 될 수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또 하나의 자연이죠.” 그렇다. 작가는 자연을 따라하고 있다. 대상과 유사해지려는 태도를 가리키는 미메시스는 그 대상-자연에의 밀착을 통해 경험을 낳는다. 작가는 고도의 섬세함으로 자연을, 도시 속의 풍경을, 어린 시절 놀이를 미메시스 하고 있다. 어린아이의 놀이는 유사성을 바탕으로 한다. 사물과 유사해지려는 능력, 유사성을 파악하는 능력인 미메시스를 작가는 어린 아이와 같이, 그리고 뛰어난 예술적 표현으로 나타낸다. 벤야민이 그가 경도한 프루스트에게서 모방충동으로서의 미메시스를 찾아본 것과 같이 필자 역시 작가에게서 놀이로서의 모방충동을 발견한다. 방안에 들어오는 빛을 표현하고, 어릴 적 경험을 미메시스 하며, 우리에게 잃어버렸던 기억과 경험을 상기시킨다. 무의지적 기억을 통해 망각이었던 과거를 기억해내는 프루스트처럼 작가는 스러져 가는 가을 공원을, 도시의 거리를, 일상공간을 밀착하여 관찰하고 그것을 세세하게 재현한다. 이렇게 섬세히 재현하는 방법으로 작가는 낙엽을 채집하고 소리를 채집하고 빛을 채집한다. 채집된 청각과 후각과 촉각, 그리고 시각은 우리로 하여금 멈춰있던, 죽어있었던 그 때의 그 시간으로 옮겨놓는다. 채집하는 작가의 모습은 ‘거리 산보자’와 닮아 있다. 도시 공간 속을 유희하며 산보하는. 현대적 삶과 유리된 적막한 공간도 아닌, 이 도시를 바삐 움직이는 현대인과도 다르게, 유희하며 표현하는 ‘거리 산보자’. 빛을 쫓고 그림자를 쫓고 나뭇잎을 쫓는 작가는 바쁜 현대인들 사이에서 유희하며 산보한다.

빛에 밀착해서, 떨어진 잎에 닮아져서 그 대상에의 밀착을 통해 경험을 가져오고, 기억을 살려낸다.

그렇게 바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지하가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는 대상과의 밀착을, 자연에의 미메시스를 독백한다. 경험을 살려내는 것, 망각을 상기해내는 것으로서 작가의 유희는 이 도시를, 이 사회를 미메시스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이 도시를 풍경 그리듯이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세세하게 드러냄으로써 보았으나 보지 못한 것, 경험하였으나 지각하지 못한 것을 드러내고 상기시키고 지각케 한다. 그것은 다소 거칠고 날 것이지만 시위 현장의 소리를 채집하는 것, “과거를 씻어내며 기억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씻은 물을 채집하는 것으로 드러낸다.

망각에 가까운 경험을 되살리는 것, 과거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벤야민이 지적하였듯이 단순한 기억의 재생이 아니라 지각하여야 하는 현실이며,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공명 속에 미래를 구원해내는 ‘변증법적 이미지’와 관련된 것이다. 작가는 이 변증법적 이미지를 타고난 예술적 표현으로 그리고 유사성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어린아이의 놀이와 같이 자연과 이 사회를 미메시스 하여 가볍게는 우리가 놓치고 사는 작은 경험 하나하나를, 지각되는 모든 것들 하나하나를 살아 숨 쉬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우리의 감각세계를 일깨워 주고 있다. 그리고 아직은 앳된 목소리로 독백하는 작가의 채집된 소리에서 혹은 몇몇의 어떤 풍경 속에서 조금 더 성숙한 표현을, 아주 조금 더 섬세한 미메시스적 표현을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