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씨앗 이야기 _ 민율

                                                                                 이채영 | 화성박물관 연구원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 “잭과 콩 나무”에서 잭은 자신과 어머니의 유일한 생계 수단인 암소를 처음 보는 노인이 주는 콩 한 줌과 바꾸었다. 노인은 자신의 콩을 잭에게 신비한 콩이라 소개한다. 호주머니에 담긴 콩 한 줌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잭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노인의 꾐에 넘어간 자신을 탓하거나 불같이 화를 낼 엄마의 표정을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을까? 짐작하건대 잭의 발걸음은 암소를 팔기위해 집을 떠났을 때보다 더 가볍고 흥겨웠을 것이다. 잭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손에 잡히는 신비한 콩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갖가지 꽃을 피울지, 혹은 금은보화가 열리는 나무가 자라게 될지 상상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을지도 모른다. 민율의 <상상씨앗 이야기>전은 어제, 오늘, 내일의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잭과 같이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상상씨앗 이야기>전에서 선보이는 12점의 작품들은 민율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검은 비닐봉지로부터 시작된다. 작가가 무심코 열어본 비닐봉지 안에는 서로 다른 형태의 작은 씨앗들이 담겨져 있었다. 작고 동그란 씨앗, 크고 가느다란 씨앗, 모두 무엇을 품고 있을까? 민율의 손에 놓인 한줌의 씨앗은 곧 땅속에 스며들고 새싹을 내보이기 전까지 또는 꽃을 피우기 전까지 결과물을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으로 연결된다. 알록달록 제각기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작은 씨앗들은 민율의 상상을 거쳐 여러 권의 책으로 자라기도 하고 달콤한 사탕으로 자라나기도 한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은 그녀가 2012년에 제작한 14점의 채색 드로잉이다. 작가는 주인을 알 수 없는 하나의 씨앗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상상의 결과물이 피어나거나 열리는 일련의 과정을 구상의 형태와 생기 있는 색채, 사실적인 표현으로 나타낸다. 이와 같은 표현 방식에 의해 관객은 민율의 상상 속에서 “상상 씨앗”들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자라나는지 관찰할 수 있다.

 <상상씨앗 이야기>전에 전시된 작품 가운데 유독 대형 캔버스 두 점은 묘하게 관객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일반적으로 대형 캔버스의 작품이 보는 이를 압도하는 감흥을 전달한다면 민율의 화면은 압도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 작은 씨앗에서 자라난 커다란 곰, 붉은 바탕에 구름과 함께 피어난 토기 여섯 마리가 그려진 대형 캔버스 작품이 시선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압도”하는 화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감싸 안음”에 있다. 그녀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감싸 안음”은 의도된 동화 같은 몽환적인 구성과 서정적인 색채 등의 조형적 특징이 만들어내는 효과일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민율이 선택한“상상”과 “씨앗” 모티프가 작품과 관객을 연결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기인하는 바가 더 크다. 특히 작가가 전시장에서 분양하는 “상상 씨앗”은 지나친 경쟁 사회 안에서 스스로를 돌볼 여유도 없이 오늘을 살아나가는 우리에게 어떤 것에도 쫓기지 않고 마음껏 상상 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전달 받은 상상의 자유를 개인적인 기억, 경험, 꿈이 스며든 자신만의 “상상 씨앗”으로 탄생시킨다. 이와 같은 작가의 이야기방식은 현대미술의 표피적이거나 강렬한 감각적인 자극과는 다른 서정적인 자극을 바탕으로 관객을 감싸 안는다.

 삶에 지친 우리의 감성을 조심스럽게 건드리는 민율의 작업이 앞으로도 많은 이의 마음에 위안과 치유가 되길 바라며 그녀의 따뜻한 배려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