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랑제 표류기 _ 정주

                                                                                 이채영 | 화성박물관 연구원

 “에트랑제”étranger 는 정주가 <에트랑제 표류기>전에서 선보이는 평면, 설치 작품의 주변을 맴돌며 이들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모티프이다. 정주의 “에트랑제”étranger 는 단어가 의미하는 낯선, 생소한, 이방인 등과 같이 작가가 유학생활 동안 겪었던 많은 기억의 조각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의 “에트랑제”는 좁게는 작가의 주관적인 기억, 경험의 한 부분일 수 있으나 넓게는 전시장에서 정주를 처음 만난 관객에게 통용될 수 있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에트랑제”는 정확한 대상을 가리키는 지칭어가 아니라 작가와 관객을 넘나들며 부유하는 의미로서 존재한다.

 <에트랑제 표류기>에 초대 받은 관객들은 정주의 세계 안에서 이방인이 되어 발걸음을 옮긴다. 낯선 장소(공간), 낯선 인물, 낯선 작품, 이곳에서 관객들은 의미 있는 형태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유랑한다. 그렇다면 관객의 의미 찾기 유랑의 목적은 무엇일까? 화면에서 발견되는 대상을 하늘, 나무 등의 구체적인 개체로 규정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여기기 때문일까? 이것이 아니라면 단 하나만의 정답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에 익숙해진 정답 강박증적인 태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주는 우리에게 무리하여 단 하나만의 정답을 찾을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정주의 <NON LIEU>(2012)는 형형색색의 섬유조각을 이용하여 프랑스어로 무(無)장소를 의미하는 단어 “NON LIEU"를 구성한 것이다. “NON LIEU"를 이루고 있는 동그랗게 말린 부드러운 섬유뭉치(가정용 발 매트)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 재료이다. 작가의 유학시절 ‘나’라는 존재는 그곳에서 철저하게 분리된 이방인이었다. 정주는 일정한 거처 없이 매번 유랑하듯 짐을 풀고 다시 싸는 과정을 겪어야했다. 마치 유목생활과 같은 이 과정에서 가정용 발 매트는 언제나 그녀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했던 기억의 일부이다.

 고정된 거처를 가지지 않고 떠도는 작가의 일상은 역설적으로 어떠한 장소이든 작가의 것이 될 수 있으며, 원하는 어느 곳이든 이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자연스럽게 정주의 <NON LIEU>는 무장소성과 가동성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NON LIEU>는 그것이 설치되기 위한 절대적인 공간 혹은 장소와 함께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NON LIEU>는 갤러리를 벗어나 작가의 선택에 의해 의미 있는 어느 곳으로든 옮겨질 수 있다. 어떠한 제약도 가지지 않는 <NON LIEU>의 성격은 새로운 공간에 설치되는 순간 이방인인 동시에 그곳을 흡수하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표출된다. 게다가 특정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가동성은 <NON LIEU>가 매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또한 <NON LIEU>는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경험이 물리적이며, 언어적인 요소에 의해 객관화되어 제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주의 <풍선>(2012) 연작은 화면 전체를 아우르는 서정적인 색채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맑고 푸른 하늘과 만나는 잔잔한 바다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이면에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함이 존재한다. 바다로 가라앉는 풍선은 천천히 수면위로 떠오르는 듯 보이거나, 캔버스의 끄트머리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다시 나타나는 또 다른 얼굴로 우리를 마주한다. 우리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화면에서 느껴지는 복합적인 감정이 단 하나의 정형화된 방식으로 해석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제한과 한계를 두지 않는 정주의 작업은 모호하고 다층적인 서술방식을 토대로 무한히 의미를 확장시켜나간다.

 <에트랑제 표류기>를 관통하고 있는 공통적인 흐름은 “낯섦과 익숙함”이다. 관객은 익숙함이 만들어내는 낯설음과 불확실성이 만들어내는 불안함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에트랑제가 된다. 그리고 곧 우리는 단 하나만의 정답이란 것이 존재하지도, 유효하지도 않은 정주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표류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