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화성이 품은 작은 심장

대안공간눈 10주년 기념전
대안공간 눈 1,2전시실, 윈도우갤러리
2014년 6월 13일 - 7월 10일

글. 정현희(경기도 문화의 전당)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그르니에의 <섬>. 그 안에는 음악과도 같이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한데, 그중 많은 이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한 대목이 있다. 작가가 이태리의 한교외 도시에 머물 동안 자주 지나치던 골목에 관한 이야기이다. “때는 사월이나 오월쯤이었다. 내가 그 골목의 직각으로 꺾이는 지점에 이를 때면 강렬한 재스민과 리라꽃 냄새가 내 머리 위로 밀어닥치곤 했다. 꽃들은 담장 너머에 가려져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꽃 내음을 맡기 위하여 오랫동안 발걸음을 멈춘 채 서 있었고 나의 밤은 향기로 물들었다.”

 

  담 너머로 퍼지는 꽃향기처럼 잔잔하고 그윽한 양식 또한 우리에겐 필요하다. 보기만 해도 절로 감탄이 나오는 으리으리한 광경 앞에서 놀라움과 경외감을 금치 못하는 것도 생의 강렬한 경험이 될 수 있지만, 그리 놀라울 것도 없고 강렬할 것도 없는 일상에서 내 생의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은 주변의 사소한 것들로부터 오는 작은 감흥, 그리고 그러한

감흥들이 쌓여가며 연출하는 그 ‘찬찬함’에 있을지도 모른다. 대안공간 눈은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 안에 위치하고 있다. 전시 공간과 더불어 까페와 레지던스가 있고, 옛 정취를 담고 있는 낡은 가옥들의 담벼락에는 예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대안공간 눈이 위치한 마을에서는 화성의 한 수문인 화홍문과 그것을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수원천이 그림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고, 다른 한편에는 팔달산 한 자락에 위치한 화성행궁이 보인다. 옛 성곽이 이루는 절경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것에 취해있노라면 절로 배가 부르지만, 정작 이곳 주민들의 삶은 문화재 보존을 위하여 부동산 개발을 제한시키는 제도 때문에 정체되고 말았다. 대안공간 눈을 운영하고 있는 부부는 본래 이곳에 위치하고 있던 자신들의 집을 내어 주어서 작가들을 불러 모으고 주민들과 소통하며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한 애착과 향수를 회복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전적으로 부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제가 ‘비빔밥 뷔페전’인 개관 10주년 기념 전시는 다소 독특했다. 신진 작가들의 비빌 언덕 역할을 해주고자 오롯이 기획전만 해왔던 공간이었지만, 이번에는 대안공간 눈에서 배출된 작가들의 작품을 관객들이 취향대로 골라 살 수 있도록 전시가 기획되었다. 촘촘하게 걸린 작품들을 둘러보다보니 이곳에서 배출한 작가들이 정말 많다는 것과 이곳에서의 활동

을 발판 삼아 큰 도약을 했던 작가들 또한 많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작가들도 먹고 살아야 하고 공간 운영도 해야 하니 기획해 보았지만 판매도 해봤던 사람이나 하는 거라며 대표 이윤숙님은 멋쩍게 웃었다. 다른 전시 공간에는 기획전 <Bomb>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큐레이팅의 밀도 있는 언어가 인상적인 전시였다.

 

  높은 담벼락 뒤로 꽃향기를 감추듯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비밀스러운 것과 미묘한 것들의 여러 층위가 존재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위용을 뽐내고 있는 성벽 안으로, 그 성벽을 자랑스럽게만 여길 수는 없는 민심이 존재하고 있고, 그러한 민심의 벽을 틈타서 은밀하게 새어 나오는 향기가 있다.

행궁동 벽화 마을이라 일컬어지는 동네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행복을 전하는 벽화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지만 그 담벼락 뒤로는 묵직한 침묵과 비밀스러움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미묘함과 비밀스러움에게 우리 사는 세상 한편을 내어주는 것이야 말로 우리 삶에 숨을 틔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본 전시는 예술공간 봄에서 기획하였으며,
전시는 오후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관람료는 없습니다.

문의 ; 예술공간 봄(031-244-4519)
442-180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76-1(북수동 231-3)
www.spacenoon.co.kr
메일 ; spacen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