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의 죽음에 다가가기

김민지 개인전 ≪다가오는 멜랑꼴리≫
대안공간 눈 제1전시실
2014년 11월 7일-20일

글. 심안(오정은)           

 

  역사 이래 멜랑꼴리(melancholy)는 토성의 영향과 함께 채액의 부작용에서 오는 이상 질환(히포크라테스), 명민한 광기가 필요한 천재들의 병(아리스토텔레스), 유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겪는 심리현상(헤겔)으로 풀이되어 왔다. 근대 이후 멜랑꼴리가 우울감이라는 감정과 분위기를 지칭하는 보다 일상적인 용어로 쓰이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어져 왔으나, 여전히 자가 조절이 불가능한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인 것만이 확증적이다. ≪다가오는 멜랑꼴리≫는 이 알 수 없는 이상한 우울감을 동양화 기법을 사용한 정제된 회화로 시각화한 김민지의 전시로 3차원 드로잉 느낌의 끈을 사용한 설치작까지 포함해 대안공간 눈 제1전시실에서 2014년 11월 7일-20일간 이루어졌다.

  뒤러가 <멜랑꼴리아>(1514)를 통해 멜랑꼴리를 지적 능력을 갖춘 예술가의 고뇌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본 아리스토텔레스의 계보를 이어 시대적 알레고리(allegory)를 차용해 표현했다면, 동시대 작가들은 동일한 주제라도 개인성이 드러나는 감정과 상념을 개별 언어를 상정해 표출하는 편에 있다. 손탁이 정의한대로 우울이 멜랑꼴리의 감정에서 매력을 뺀 것이 맞다면 멜랑꼴리를 천재의 증상으로 보는 고대적 시각이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보편적 감정으로 그것의 해독에 특별한 지식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면 동시대의 취향이 드러나는 김민지의 드로잉을 교감하는 데 어떠한 체계적인 지침이 선행되야 할 것은 없다. 그것은 답이 정해져있는 알레고리적 시니피앙(sigifiant)을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시니피앙의 그물망을 나름의 시니피에(signifie)로 이해하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람 주체의 자유의지에 따른 해석은 작가의도를 한참 벗어나 전혀 다른 지점에 도달할 수도, 개성으로 미화한 낱개의 방언만이 난무할 수도 있는 위험을 내포한다. 김민지는 그러한 위험을 경계하며 개인이 주체가 된 모두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지점에 다가서는 중에 있다.

  우리는 우울감에 보다 신비로운 매력을 더해 멜랑꼴리로, 여기에 기이하고 두려운 감정을 추려내 언캐니(uncanny)의 특성을 구분할 수 있다. 생각의 전능성, 욕망의 순간적인 실현, 숨어있는 해로운 힘들, 비생물체들이 살아 움직이는 현상과 같은 것들이 언캐니의 감정을 발생시키는 조건이라고 언급한 프로이드의 글이 아니더라도 '두려운 낯설음'으로 번역되는 이 감정을 과거의 특정 순간으로부터 포착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작가가 표현한 빈 집의 스산한 풍경, 망망 바다 위 떠 있는 배 한 척, 잠식하듯 녹아 흐르는 빙하와 불쑥 나타난 싱크홀과 같은 이미지로 그것을 형상화하는 데 동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미지, 다시 말해 시니피앙이 어떻든 간에 언캐니의 감정은 무의식이 억압해온 지점에 도달한 현상적 징후이니만큼 우리를 불편하게, 동시에 진실에 마주하게 한다. 작가는 <경계>(2014)에서 트라우마였던 깊은 물 속에 진입 직전인 인물의 실루엣을 그렸다. 억압과 극복, 무의식과 의식의 기로이기도 한 지점에서 어느 쪽이든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위치- 그것은 '다가오는'으로 표현한 멜랑콜리보다 나아가 '다가가는' 뜻밖의 감정을 동반한 모습임에 틀림없다.

  김민지의 작업에서 반복 등장하는 개념으로서의 공간은 때로 바다와 같이 무한대로 열려 있고<고요한>(2014),<경계>(2014), 때로 좁은 방 안처럼 사방이 막혀 있다<growing space>(2014),<imperfection>(2014),<시초의 공간>(2013). 이는 표층이 더 깊은 아래로 사라져 버릴 듯한 투사체의 형상<hole>(2014)과는 대조적으로, 폭발한 연기처럼 나오는 감정적 형상의 자유로운 방향성이 나타내는<어느 오후>(2014) 둘 사이의 이중성에도 닿아있다. 부숴지는 위험과 상실의 고통을 느끼는 한편으로 파괴된 면에 호기심과 관심을 갖는 작가의 상반된 모습은 욕망의 실현이나 두려움의 제거가 쾌락원칙에 의거한 단순한 소망이라기보다 내적 갈등을 유발하는 보다 복합적인 것임을 입증하는 사례가 된다. 내밀한 영역을 지키고 싶지만 외부에 표출하고도 싶은 심리, 변형과 소실을 거부하면서도 구멍을 뚫어 들여다 보고싶은 욕망은 화면에 등장하는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소품과 엉성한 경계를 친 안전뿔, 설명적 묘사의 의도된 생략과 꿈을 관망하듯 보는 전지적 시점의 요소가 복합되어 감상적으로 전달된다.

  라캉의 시각으로부터 우리는 주체없는 환상은 수행의 사태를 미리 알고 있는 '나'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발견'이며 이를 통해 의외의 발견물(trouvaille)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아왔다. 김민지는 이 '발견'을 위해 자각몽(lucid dreaming)의 경우와 같이 스스로 환상을 만들되 주체의 개입에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타자의 위치에 둔 전시를 기획했다. 이는 뒤러 시대와 다른 감상으로 관람객은 작가와 동등한 위치에서 환상적 풍경을 관조하며 멜랑꼴리의 시니피에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체를 소멸시킴으로서 주체 자신과 조우하려는 시도가 가능했다면, 멜랑꼴리-주체의 죽음을 갈구하는 무의식적 소망의 요구-에 반응한 ≪다가오는 멜랑꼴리≫展은 가히 고무적인 과정이다.

  작가는 애착의 대상이 사라진 부재의 공간에서 타인은 물론 그 자신 또한 제거하는 위협을 가중시킨 후에 비로소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완성된 멜랑꼴리하고 스잔한 그림의 분위기는 어딘지 불편한 진실을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상실의 시대, 가학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일상에서 숨겨왔던 무의식의 초상을.

본 전시는 예술공간 봄에서 기획하였으며,
전시는 오후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관람료는 없습니다.

문의 ; 예술공간 봄(031-244-4519)
442-180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76-1(북수동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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